마지막에 대한 변명

마지막에 대한 변명

석두 6 6,285
마지막, 맞습니다. 그날 내가 죽은 것은 더 이상 자염이의 죽음에서 헤매던 내가 죽은 겁니다.
그런데 내가 살아서 이 글을 쓴다는게 조금 뒷을 정리하지 못한 탓이지요.
사실 거기서 끝내고 싶었던게 솔직한 내 바램입니다.

승학산은 아직 못 올라봤습니다. 보기는 자주 본 산이지요.
그리고 그 사건때에는 승학산이란 이름도 몰랐고 지금처럼 전국의 산 다니던 때가 아닙니다.
글과 같이 올린 산이 있는 부산의 일부분을 구걸어스에서 켑쳐했습니다.

석두가 군대생활빼고는 거의 모두를 이 지역에서 보냈는데, 광복동 남포동 자리가 짤렸네요.
노란 큰 원이 아마 내가 약에 취해 잠 든 곳일겁니다. 그 오른쪽 산 능선길은 부산 사람이 노상 보는 산모양입니다. 그 아래 내 모교가 있고 도 누구 누구네 집이 있는데

그림 상단부에 노란 원 근처까지 그은 노란 선은 석두가 어릴때 혼자 자주 넘어가던
이생골이란 게곡인데 그 계곡이 노란 원에 속한다는겁니다.
저 노란 원 자리는 내가 가 본적이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자꾸 깊이 들어가면 오히려
동쪽 마을과 가까워집니다. 부산의 산은 모든 산 하나 타면 다른 동네가 나옵니다.
이건 요즘 열심히 산 다니면서 알았습니다.

내가 잠 든 자리를 인근의 사람들이 지나가다 보고는 신고했을거고 군복차림이라 헌병대에 넘겼겠지오. 나는 내가 며칠만에 깨어났는지 모릅니다. 아마 하루나 이틀 정도가 아닐까요.

통합병원? 연산9동인가 망미동인가 잘 모르겠고 하여튼 거기서 깨어나 헌병대 영창에 갔다가 다시 12교도소에서 반가워할 수 없는 자들을 만납니다. 이번에는 2월 징역을 받습니다. 2개월은 잠시입니다. 재판과정에서 1개월 지나버리니까요. 출소 후 9보충대 가니까 전과자 내무반은 반이 아는 얼굴입니다. 거기서 뭔가 착오가 있었는가 거의 두어달 보낸 6월에 101보인가요? 의정부로 가서 또 교도소 출신이라 괄시 좀 당하고는 동두천읍 초성리 어느 병기대대로 갑니다. 병기주특기는 부관이 되어 있어서 대대본부 서무계 발간병으로 제대할 때까지 근무합니다.
부대적으로는 말썽 많은 석두이나 마음은 딱 한번 흔들린거 빼고는 평안합니다. 말썽도 군기위반하고는 상관 없고요. 월남에서 귀국한 장기하사가 정신병 병력을 핑계삼아 횡포를 놓다가 나하고 정면충돌했는데, 그 초성리 접대부 있는 요상한 술집에 대대본부 실세들 술 마시다 일어난 충돌에서 말리는 민간인에게 대들다가 크게 봉변을 당했답니다.
민간인 둘은 헌병 소위와 중사였으니 상상해 보시라고요.
그 날 보름달이 환한 설야입니다. 무지 맞았습니다. 원 없이 맞았다고해야 되나요?
눈밭에 벋어 있는 나를 부대원이 겨우 끌고 부대로 돌아갔는데 그 다음 날 아무런 일 없는듯이 기상해서 행동하는 나를보고 부대원 모두가 놀랬습니다.
광주 공정대에서 미귀 자주 했는데 그래봤자 4~5번일겁니다. 그 부대에 개가 3마리 있었다는 애길 했는지 모르겠는데 한번 더 언급하면 관리관은 블독, 수송관은 미친개 그리고 나, 개득만 세마리입니다.
블독과 개득만의 기 싸움이 하필이면 만우절날 벌어집니다. 그 전에 부산 출장에서 뒤틀려져서 서로 각자 귀대한 다음 날이 만우절이라, 물론 난 하루 미귀입니다. 빌어야 할 개득만이 빌지  않으니 호출합니다.
만우절이야. 동료들의 장난이라고 서너번 무시했더니 부대 최고참까지 나서는 바람에 아차! 때는 늦었습니다.
빳따를 맞습니다. 몇대 맞겠느냐고 묻데요. 불독 관리관 빳따세기는 맞아본 놈이 안답니다.
지은 죄도 있고 20대를 맞겠다했는데, 관리관 손목시계 풀고는 마구 때리는데, 스무대까지는 신음소리 없고 몸 비틀림없이 아주 단정하게 맞는 내 태도가 화를 불렀습니다. 스무대 이후 몇대 더 맞았는지는 몰라도,
다행히 엉뎅이 살점 안 터졌고, 이틀 후 동작에 이상 없는 나를 보고 철인이라 했습니다.
몸은 무지 단단하나 마음이 여러 여러가지 모순된 행동이 군 생활 내내 계속되었겠지요.
제대 예상날짜에서 대략 1년  8개월 후 70년 7월 초에 제대를 합니다.
제대 후 갈 곳이 없어 음악실 주변에서 헤매기를 한 달 후 쯤에 형님이 광복동에 날 찾아 오데요. 그래서 간 곳이 태광산업이 있는 구서동입니다. 이 후는 공순이 공돌이,13세 연하이야기입니다.
참, 자염이 꿈은 그 후 한번 더 꿉니다. 금강공원으로 발령 받기 전 날입니다. 난 그 금강공원에서 이상한 녀석에게 뇌물 받아 니콘 FM 구입하고는 그 녀석 공갈협박에 공무원 그만둡니다.
그래서 결론을 "자염이 꿈에 나오면 재수 없다"였는데 한참 세월이 흘러 뭔가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
 "자염이는 꿈에서 나에게 경고를 보냈구나"를 알겠더이다.
이제 진짜 마지막입니다.
다음 글이 나온다면 내 인생 애기가 아니라 내 이웃 얘기일껍니다. 

Comments

giri
음...실장님...구,동아대가 아니라...경남고인데효...제모교...
부고뒤 조오기...저희 홈이 보여효... 
★쑤바™★
요즘에야 군대가 2년이지...
그시절에는거의 3년을 넘어간단 말도 있던데...
뭐...3년 6개월이던가?
근데..거기에 1년 8개월을 더한다면...
거의 5년 가까이...군대에서 고생하셨네요.

오히려..
마음 추스리기엔 넉넉한 시간이 아니었을런지.
그 전에 나왔으면 또다른 방황을 불러내었겠지요. 
마법사 온
저도 이웃얘기에 "피식" ^^ 
아침이오면
^^ 이웃얘기도 기대되여...석실장님.. 
거리
돌..., 돌..., 돌...,

...지독히도 굴러다니셨네요...,
................그래서 모난데 한군데도 없죠...,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보다 훨씬더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멋진 삶이었습니다..., 
명랑!
거럼...군 생활을 얼마나 한거죠? 계산하려면 글 다 뒤져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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